[스크랩] ▣ 팔공산 동릉의 칠공주
♠ 팔공산동릉(629.1m) 경산시 와촌면
♣ 언 제 : 2003년 12월 14일(일) 맑음
♣ 어디로 : 천성암-기기암-백흥암-중암암-선본사-묘봉암-원효암
♣ 얼마나 : 안내표시기 및 도상거리 약 14.4km, 6시간 00여분
♣ 누구랑 : 외톨이
▣ 구간별 산행거리 : 천성암입구-(1.2)-천성암-(1.3)-기기암-(1.0)-백흥암-(1.8)
-중암암-(1.8)-정상등산로20번-(0.6)-인봉 앞 삼거리봉-(0.8)-선본사-(1.8)-묘봉암
-(1.8)-원효암-(2.3)-출발지=안내표시기 및 도상거리 약 14.4km
※표지판마다 다소 거리차이가 있음
11 : 10 대한리 천성암입구에서 출발(천성암 1.2km)
11 : 21 능선위(천성암 0.6km)
11 : 29 ~ 30 천성암
11 : 37 능선네거리
11 : 54 ~ 57 기기암
12 : 04 안부네거리
12 : 07 ~ 10 우측봉우리 헬기장
12 : 13 ~ 15 안부네거리
12 : 25 ~ 30 백흥암(묘봉암 1.4, 중암암 1.8km)
12 : 47 ~ 48 삼거리갈림길(은해사 3.0, 묘봉암 0.8, 중암암 0.7, 능선재 2.5km)
13 : 05 ~ 10 중암암
13 : 20 ~ 30 만년송, 능선위 이정표(은해사 4.0, 능선재 1.5km)
13 : 45 능선삼거리(은해사 4.3, 기기암 2.1, 능선재 1.2km)
13 : 50 삼거리봉(은해사 5.6, 능선재 0.9km)
14 : 01 ~ 03 정상등산로 20번 삼거리봉(갓바위 1.8, 은해사 5.5, 동봉 5.4km)
14 : 21 ~ 30 인봉 앞 삼거리봉(갓바위 1.2km)
14 : 46 ~ 55 선본사
15 : 13 ~ 15 주능선사거리
15 : 26 ~ 30 바위봉우리
15 : 36 ~ 37 묘봉암
15 : 46 능선위
15 : 57 삼거리(좌측 기기암 방향)
15 : 58 ~ 16 : 05 삼각점(629.1m)봉
16 : 10 능선삼거리(좌로 내림)
16 : 19 ~ 25 천성암 뒤 봉우리
16 : 33 ~ 35 되돌아온 능선삼거리(좌로 내림)
15 : 44 ~ 46 원효암
16 : 54 도로
17 : 12 출발지 도착
팔공산 동릉의 칠공주(은해사 말사 잇기)
천성암으로 가는 길 입구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요즈음은 경방기간이라 그 앞에 감시원이 늘 지키고 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오전부터 의자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다.
괜히 깨워 옥신각신 하느니 그냥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앞으로 지나친다.
암자 가는 길은 비포장이지만 차는 충분히 들어갈 수가 있다.
요즈음은 웬만한 암자는 거의 다 차가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어
그것이 신도들을 위한 배려인지 아니면 스님자신들을 위함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걷는 고행이 싫은 것은 스님이나 신도들이나 모두가 한마음인 것 같다.
오로지 그렇지 않는 것은 등산객들만이 걷는 고행을 사서하는 느낌이다.
안부에 올라서면 좌측으로 능선길인 듯한 것이 보이지만
암자를 거쳐 가기 위하여 넓은 길을 따라 계속 간다.
나무에 걸려있는 천성암 600m 표시기를 지나 잠시 후 좌측으로 가정집 같은
건물이 나오는데 외모로 봤을 때는 암자가 아닌 주택으로 보이는 그런 집이다.
대숲사이로 바로 가는 길이 나있지만 잠시 들러본다.
스님들이 거주하는 건물(요사채)인 듯 추위 때문인지
앞을 가려놓은 뜰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특별히 볼 것은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뒤로 돌아가면 조그만 한 법당하나가 전부,
어쩌면 보여줄 것이라곤 몸뚱어리 하나가 전부인 함소원이라면 말이 되려나...??
바로 지나치면 조금 전 갈라졌던 우회로와 만난다.
암자를 지나면 호젓한 산길로 이어지고 특별한 오르막이 없이
산 옆구리를 붙어가다 지능선에 접하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좌측 오름 길은 동릉 오름길. 우측 내림은 은해사 일주문 가는 길이다.
바로 가면 우측으로는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암자가 드러난다.
잠시 후 좌측에서 접하는 길과 이어 좌로 오름 길이 또 하나 나타나지만
오르지 않고 바로 외나무다리를 건너 암자가 있는 쪽으로 내려가 본다.
기기암이다. 빙 둘러싸인 산속에서도 넓은 앞마당을 두고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층으로 지은 건물이 요사채와 법당을 겸하고 있어
어쩌면 깜찍한 연기와 노래를 겸한 장나라라면 어울리려나...??
잠시 한바퀴 둘러보고 선방건물 오른쪽으로 하여
확실하지도 않은 산길을 따라 지능선에 올라본다.
안부자리로 좌우로 능선길이 이어지고 바로 넘으면 백흥암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바로 내려가기가 아쉬워 우측봉우리에 올라본다.
헬기장으로 되어 있으나 그다지 시원한 조망을 보여주지 못하여
다시 돌아 나와 안부자리에서 백흥암으로 내려간다.
약간 비켜 앉은 듯이 암자치고는 규모도 제법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국보는 없어도 보물은 있다고 하지만 비구니들의 수도도량이라
관람은 하지 못하고 외부만 쳐다보고 돌아 나온다.
다른 암자와는 달리 그래도 가진 것은 많아 잘 드러내지 않으려다가
언젠가는 돌아서는 고현정이 될까 염려서러움이 들기도 한다.
중암암으로 향하는 길은 콘크리트포장길로 약간은 지루한 길이다.
조금가면 좌측에 이름 모를 낯선 암자 같은 것이 보이기에 잠시 들렀다 간다.
여기서는 사전예약 없이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경고를 해 놓았지만
무시하고 들어가다 감시 카메라에 경고음까지 울리기에 얼른 돌아 나온다.
묘봉암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중암암이 가까워질 무렵에
좌측 개울가에는 비스듬한 폭포도 있다.
수량이 많을 때는 멋진 모습도 보여줄 것 같은데...
차가 가는 길인데도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제법 헐떡거린다.
돌계단을 밟고 올라 돌문을 지나서 암자로 들어선다.
일명 ‘돌구멍절’이라고 협소한 이곳에 더구나 돌구멍을 지나
암자를 세웠다는 것이 어쩌면 엽기적인 그녀(전지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마루에 걸터앉아 한숨을 돌리고 잠시조망을 즐긴다.
다시 돌아 나와 그래도 산에 왔다고
능선 한번 밟지 않고 갈 수 있겠나 싶어 암자 뒤 능선에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면 기암괴석과 건들바위 그리고 만년송이 잘 어우러져
조망도 좋아 그냥가긴 아쉬울 것 같아 갖고 온 간식으로 요기를 하며 조망을 즐긴다.
능선을 따라 팔공산주능선으로 향한다.
중간 중간에서 개인 또는 단체로 산행 온 많은 사람들과 접하기도 한다.
헬기장을 지나고 지능선을 접한 뒤 정상등산로 20번 주능선 삼거리봉에 이른다.
이곳부터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좌측 갓바위쪽으로 향한다.
중간에 인봉가기 전 삼거리봉우리에서 조망을 하기위해 바위위로 올라본다.
그런데 오늘은 조망이 영 아니다. 스모그로 인하여 가까운 조망도 뚜렷하지 않다.
지난주 바로 옆 봉우리에서 조망에 심취해 한 시간여 동안
칼바람을 맞아가며 조망을 즐겼는데 오늘은 잠시 사람구경만 하고 가야겠다.
바로 앞 지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선본사로 들어서면 어딘가 모르게 ‘짱’으로 느끼는 분위기를 떨칠 수가 없다.
언젠가 갓바위를 끌어않고 세력(?)다툼이 있었을
때를 생각하면 조폭마누라(신은경)를 생각케도 한다.
집에서 늦게 도시락도 없이 나선 관계로 선본사 주차장으로 내려와
어묵과 국물로 속을 좀 달래고, 다시 선본사로 오르다가 선본사주지
차고인지는 몰라도 차고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면 네거리로 조금 전 정상등산로 20번에서 뻗어 나온 능선에 접한다.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중간에 바위봉우리에 올라 한숨을 돌리고,
건너 중암암이 보이는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좌측 중암암 내려가는 길은 그냥 지나고,
조금 더 가면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면 바로 묘봉암으로 내려선다.
군더더기 없이 색시함(이효리) 그 자체이든 것이
요즈음엔 웬 스토커(?)들이 그리 따라붙는지...
한바퀴 둘러보고 마당으로 내려서기 전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조금 전 바위봉우리에서 갈라진 능선에 다시 붙는다.
잠시 후 삼거리에서 우측 길은 감나무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얼마간 더 가면 삼거리좌측 길은 기기암에서 올라선 능선 길과 접하는 길이 된다.
삼각점봉우리에서 한숨을 돌리고 바로 나온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린다.
이어 다음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 마지막 봉우리까지 가본다.
여기서 바로 가면 처음 만났던 천성암이 나오지만
다시 돌아가 원효암가는 능선을 타고 도로로 내려선다.
원효암으로 들어선다. 드러날 듯 하면서도 쉬 드러내지 않는
산소 같은 여자 장금(이영애)이라면 어울리려나...??
하지만 자꾸만 변해 가는 모습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꼭히 정상을 올라야만 등산의 묘미를 느끼는 것은 아니리라!!
산을 알고 자연을 즐기며 문화를 느끼고 오는 산행이야말로
값진 산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천성암을 제외한 나머지는 은해사의 말사로써
스님들의 족적을 따라 암자를 이어가는 산행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종교라고는 근처도 못 가본 넘이 웬 암자를 따라 나서기는..... ㅉ ㅉ ㅉ
신성한 암자에 억지맞춤이라는 생각이들 수도 있으나 이것은
순전히 떠돌이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다른 뜻은 전혀 없음을 밝혀둡니다.
※아래는 자료에서 발췌한 내용
기기암
기기암은 애장왕때 국사로 봉안된 정수(正秀)가 816년(헌덕왕 8)에 창건하였고
1546년에는 쾌선이 중건하여 안흥사(安興寺)라 하였으며 60여명의 승려가 살았다고 한다.
그 뒤 182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우로는 요사채와 법당을 겸한 건물 1동이 있다.
법당은 'ᄀ'자 건물로 안에는 보살좌상(菩薩坐像)을 모시고 있다.
산령각은 안에 칠성탱화(七星幀畵), 산신탱화(山神幀畵), 독성탱화(獨聖幀畵)가 모셔져 있다.
백흥암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 절은 국사 혜철(惠徹)이 861년(경문왕 1)에 착공하여
873년에 완공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송지사(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6년(명종 1)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고, 1651년(효종 2)에 중건하였으며,
167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
1730년(영조 6)에는 보화루(普化樓)를 중건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청봉이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한때 수백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極樂殿 보물 제790호)을 중심으로 영산전․명부전
(冥府殿)․문루(門樓)․산신각(山神閣)․선실(禪室)․원주실(院主室)․요사채등이 있다.
수도도량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석가탄신일과 백중기도 때만 일반인에게 출입을 개방하고 있다.
극락전수미단(銀海寺百興庵極樂殿須彌壇)-보물 제486호
백흥암 극락전 내부의 주불삼존을 안치한, 높이 1.25m, 너비 4.13m 조선시대의 불단이다.
수미단이란 불상을 안치한 일종의 대좌와 같은 형식으로,
불당내의 닺집과 더불어 장엄한 불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수미산이라는 불교세계의 중심을 밑에 두고 앉아 있는
불타의 보다 높은 격을 상징화시켜 수미단을 불상대좌로서 표현한 것이다.
이 백흥암수미단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지금은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 나란히 앉아 있다.
후불상단탱화(後佛上段幀畵)를 벽면 앞에 불단이 있어서 바라다보는데 안정감이 높다.
불단은 장방형이고 앞과 좌우옆면을 삼단(三段)으로 구획하고 아래에 받침대를 두었다.
받침대는 전면(前面)을 다섯 간으로 나누고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내구(內區)에 너브러진 화훼(花卉)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중암암
일명 돌구멍 절이라 불리는 중암암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곳이다.
세 살 먹은 어린이가 흔들어도 흔들린다는 건들바위,
만년을 살았다는 만년송, 우리나라 제일 깊다는 해우소,
이런 것들이 유명하며 기암괴석이 빼어난 경치 역시 자랑이다.
장군수는 김유신이 열일곱 살 때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하여
붙어진 이름으로 물맛이 매우 뛰어난 석간수이다.
그리고 중암암은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도처이다.
중암암의 역사는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어 알 수 없고,
다만 돌문 밖에 있는 석탑을 보아 오래된 암자일거라고 추측해 볼뿐이다.
이 절에는 샘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 이 샘에서 암자에 계신 스님을 위해 날마다 한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샘에서 쌀이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산적이
욕심이 나서 스님을 죽이고 구멍을 크게 뚫으니
쌀 대신 피가 솟구치면서 돌 바람이 불어 산적을 즉사시켰다는 것입니다.
선본사
선본사는 팔공산 관봉, 노적봉, 선본재, 인봉과 태실봉, 시루봉 등이
서로 맞닿은 곳에 자리하며 서남쪽으로 바라보면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관봉이 바로 마주 보이고 노적봉, 인봉 등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선본사는 바로 이 갓바위 부처님에서 내려다보이는
팔공산의 아늑한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절 이름보다는 '팔공산갓바위부처님'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남의 팔공산관봉아래 자리한 갓바위부처님은 약사여래로서, 신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영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선본사는 갓바위부처님의 영험 서린 천년고찰의 유서 깊은 약사도량이다.
그래서 가파른 산세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고난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갓바위 부처님을 찾는 것은 바로 예로부터 갓바위 부처님의
이 같은 영험이 널리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묘봉암
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오랫동안 관음기도처와 수행처로 전승되어 오다가 1485년(성종 16)에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최근에 6․25사변 당시 폐사된 것을 법운(法雲)스님께서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관음기도와 신신기도처로 유명하고 과거에는 나라에 큰 일이 있거나
큰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은해사 대중스님들이 모두 올라오셔서 산신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산령각 옆 석간수는 불치의 병도 낳게 한다는 신비의 약수로 유명하다.
묘봉암의 가람 구조는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왼쪽에 요사채가 있으며,
오른쪽 뒤편에는 산령각(山靈閣)이, 원통전 아래에는
염불당(念佛堂)과 부목방(負木房)이 위치해 있다.
염불당은 현대에 지어진 시멘트 건물로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요사채이다.
'염불'이란 부처를 생각한다는 것으로 기도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원효암
원효암은 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팔공산 동족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8년(서기 668)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그 뒤 고종 19년(서기 1882)에 긍월대사가 중창하였고, 1986년 산불로
법당이 소실되었으나 1988년 허운스님이 극락전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로는 신라말기에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높이 1.34m의 마애불좌상이 암자뒤편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산신각, 요사 4동, 수각 1동이 있다.